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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엘 현대 연예 AU
*엘, 트로웰, 라피스, 시벨, 데르온 = 아이돌 그룹
스포트라이트의 강한 빛에 데르온은 눈을 살짝 찡그렸다가 다시 활짝 웃었다. 이렇게 시선을 받는 자리라니. 언제나 생각하지만 불편하군. 데르온은 카메라를 향해 연신 손을 흔들어대며 생각했다. 그러다가 생각이 표정에 비칠까, 다시 입꼬리를 올렸다. 쥐가 날 지경이었다. 데르온은 10분정도 계속되는 인터뷰에 답답함을 느끼며, 엘에게 뭐라 말을 걸려다가 무심코 손을 뻗어 그의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정리해주었다. 그러다 멈칫 행동을 멈췄다. 분명 방금 찍힌 수십장의 사진은 [데르온과 엘! 그 둘의 은밀한 신호?!] 등의 저렴한 제목으로 실시간 인터넷 기사에 올라갈 것이다. 엘은 갑작스런 데르온의 손길에 당황해, 고개를 올려 데르온을 쳐다봤다. 데르온이 엘에게 뭐라 변명할 새도 없이 포토타임은 끝나버렸고, 시벨이 엘을 끌어당기는 바람에 둘은 서로에게서 시선을 거두곤 포토존을 벗어나야 했다.
“뭐야, 둘이 무슨 얘기라도 했어? 왜 기사 제목이 이따구냐.”
라피스가 대기실에 앉아 중얼거리듯 물었다. 데르온은 뒷덜미를 쓸어올리면서 엘에게 말했다.
“그냥 언제쯤 끝나는지 물어볼려고 했는데, 머리카락이 신경쓰여서 그만...”
“아, 그거구나, 괜찮아요. 팬들 난리 났겠네.”
엘이 킥킥거렸다. 그리곤 스타일리스트에게 화장대로 끌려갔다.
다소 부산스런 대기실에서 데르온은 잠시 눈을 붙였다. 하루 종일 이리갔다 저리갔다. 오늘만 해도 다섯 번째 스케쥴이었다. 데뷔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신인 아이돌로서 오만한 반응일지도 모르지만 데르온은 인생이 참 피곤해졌다고 생각했다.
‘괴물 신인’ 각종 언론 매체들과 팬덤 사이에서 그들은 그렇게 불렸다. 데뷔곡으로 지상파부터 케이블까지 모든 음악 프로그램에서 1등을 거머쥠과 동시에 온갖 광고와 예능에서 러브콜이 쏟아졌다. 그들이 이렇게 주목받은 것은 그들의 외모나 신인답지 않은 완성도, 맴버 각각의 개성때문이기도 했지만. 가장 큰 작용을 했던 것은 역시 아크아돈 소속사의 최초 남자 아이돌 그룹이라는 이유였다. 역대 그들의 선배들은 쭉 싱어송라이터 컨셉의 가수로 데뷔하거나 아역부터 업적을 쌓아올려 유명해진 케이스였다. 그런 아크아돈에서 아이돌을 그것도 그룹으로 데뷔를 시키다니. 세간의 집중이 될 만도 했다. 그렇게 그들은 데뷔하자마자 아이돌 팬덤을 초토화 시켰고, 1년차도 되지 않아 이렇게 하루에 기본으로 서너개의 스케쥴을 소화하면서굴러야만 했다.
“데르온, 일어나. 곧 라이브 시작이야.”
트로웰의 싸한 목소리에 데르온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라이브.
“많이 피곤했나보네, 원래 사람있는 데서 잘 안 자잖아.”
“아... 잠들었습니까?”
“세상모르고 자던걸, 어쨌든 스텝들 기다린다. 빨리 준비해.”
데르온은 멍하던 정신을 겨우겨우 욱여넣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러자 데르온의 몸에서 뭔가 살짝 떨어졌다. 분홍색 담요였다. 누군가(이미 누군지 알 것 같지만.) 잠든 데르온에게 덮어준 것 같았다. 데르온은 그 담요를 곱게 접어들고선 코디에게 몸을 맏겼다. 피곤이 훅. 풀려버린 기분이었다.
“음원 차트 종합 1위는...”
라피스가 지루한 지 하품을 했다. 누가봐도 그들의 당연한 수상이었다. 음원 공개가 7월달이었는데, 12월달인 지금도 20위 안에서 계속 맴돌고 있으니 말이다. 진행자가 결과를 공개하기도 전에 팬석은 난리였다. 그런데 결과를 확인한 진행자의 표정이 이상했다. 그리곤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1위는...”
결과를 듣자마자 관객석이 술렁거렸다. 충격적이게도 완전 다른 그룹이 수상을 했기 때문이었다. 아크아돈과 라이벌 관계의 소속사 그룹이었다.
“이 새끼들이...”
시벨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려는 걸 엘이 끌어당겼다. 이게 카메라에 잡히기라도 한다면 정말 끝장이었다. 어쩌면 신인 아이돌이 상을 못받는 게 당연할지도 모르는 일. 엘은 씩씩대는 시벨을 진정시키려 했지만 시벨의 화는 좀처럼 가라앉질 못했다.
“멍청아, 지금 그렇게 추잡스럽게 화내봤자 해결되는 일이 뭐가 있냐? 일 크게 만들고 싶으면 어디 한 번 나서보던가.”
라피스가 팔짱을 끼곤 시벨에게 쏘아붙였다. 그에 시벨의 화는 방향을 돌렸다. 뭐라했냐? 부들부들 거리며 라피스를 노려봤다. 시벨이 더 큰일을 내기 전에 트로웰은 발꿈치로 라피스의 발등을 찍었다.
“너야말로 우리끼리 분열을 일으키면 어쩌자는 거야, 조용히 해.”
“아니, 내가 틀린말을 한... 악!”
결국 트로웰의 손바닥은 라피스의 뒷통수를 가격했다. 엘은 깜짝 놀라서 벌떡 일어나서는 셋 다 제발 좀 그만하라고 자그맣게 소리쳤다. 다행히 카메라는 수상중인 무대를 찍고있는 듯 했다. 엘은 깊게 한숨을 쉬고, 무대를 보며 환호하는 시늉을 했다. 가장 속이 타들어가는 건 리더인 엘일텐데 말이다. 데르온은 그런 엘의 등을 살짝 토닥였다. 그에 엘은 억지웃음을 자아내며 괜찮다고 말할 뿐이었다.
그렇게 시상식의 막이 내렸다.
“그 자식들 뭐야? 지금 순위권에도 없는 노래가 1등이라고? 미친 거 아니야?”
대기실로 돌아오자 시벨은 답답한 듯 넥타이를 풀어해쳤다. 단단히 화가난 듯 했다. 스텝들은 철수 준비 때문에 밖으로 나가버려 지금 대기실에는 맴버들이 전부였다. 라피스 또한 시벨과 마찬가지로 못마땅한 표정을 숨기지 않았다. 트로웰은 소속사 간부들과 통화중이었다. 아무래도 소속사간의 대립이 영향을 미친 것 같았다. 데르온은 아까부터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엘을 보고는 위로해야 할지 모른척 해줘야 할지 고민하는 중이었다. 그러다 갑자기 엘의 고개가 들어올려졌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곤란한 표정을 한 데르온과 마주쳤다.
“어... 울고있는 줄 알았습니다.”
데르온의 예상과는 다르게 엘의 표정은 뭔가 결심한 듯 굳센 표정이었다.
“울 때가 아니에요. 감히 우리 팬들의 스밍과 지출을 무시하다니. 꼭 밟아줄거야.”
엘의 말에 모두 고개를 들고 엘을 바라봤다.
“우리, 이번 신곡으로 다 부셔버리자. 빼도박도 못하게.”
꽉 쥔 작은 주먹을 보아하니 그가 리더가 된 이유를 단번에 납득한 맴버들이었다.
